Memories of the Alhambra EP 01

S#1 스페인 바르셀로나 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밤거리.

정세주,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다.

정세주 : (초조한 듯 말을 더듬으며) 기사를 봤어요. 바르셀로나에 오신다고. 제가 지금 메일을 보냈는데 좀 봐주세요. 하, 씨... 그 사람한테 팔기 싫은데. 근데 내일까지 결정을 해야 돼서. (갑자기 공포에 질려 주변을 살피며) 그, 그라나다에서 만나요! 보니따 호스텔에서 기다리면 갈게요! 가끔 묵는 곳인데..!

정세주, 수화기를 내던지고 냅다 뛴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차에 몇 번 치일 뻔하면서 달린다. 바르셀로나 기차역에 도착해 쫓기듯 기차에 올라타고 기차는 출발한다.

제자리에 놓지 못 해 전화선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수화기에선 유진우의 목소리만 나온다.

유진우 : <E>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세주, 터덜터덜 4인실 침대칸에 들어선다.

누워있던 3명의 외국인들 일제히 정세주를 쳐다본다.

정세주는 1층 침대에 앉는다.

맞은 편 외국인 : Hey, where are you going?

정세주 : 그라나다.

맞은 편 외국인 : Oh, great. I’m going there, too. So, would you wake me up if I fall asleep?

정세주, 끄덕인다.

맞은 편 외국인 : Thank you.

외국인, 헤드셋을 끼고 누워 잡지를 읽는다.

정세주, 웅크려 앉아 여전히 불안한 듯 차창을 바라본다.

야간기차는 아침까지 달리고 있다.

<E> (스페인어) 승객 여러분, 저희 기차는 곧 그라나다 역에 도착합니다.

    Ladies and gentleman, the next stop is Granada station.

잠들었던 정세주, 방송을 듣고 일어난다. 외국인을 깨운다.

정세주: Despierta. Ya llegamos a Granada. (=일어나요. 그라나다 다 왔어요.)

외국인, 미적거린다.

정세주, 짐을 챙긴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자 정세주는 극도로 불안해한다.

<E>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정세주, 문을 열자 누군가 총을 쏜다.

기차가 그라나다 역에 도착한다. 외국인, 잠에서 깬다.

외국인 : (빈 정세주 침대를 보며) 가방을 놓고 내린 거야?

외국인, 나간다.

유진우 Na; 이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 청년의 마지막 행적이다.

S#2 그라나다 보니따 호스텔 새벽

보니따 호스텔 사무실 벽에는 정희주의 사진, 그라나다 지도 등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사무실 책상은 계산기, 돈으로 어지럽혀져 있다. 정희주, TV를 틀어놓은 채 소파에서 자고 있다.

TV에선 유진우의 MWC 인터뷰가 나온다.

<E> : 초인종

정희주, 잠에서 깬다.

<E> : 초인종 2번

정희주, 비몽사몽 일어나 리모컨으로 TV를 끈다.

야심한 새벽 1시 16분이다.

정희주 : (졸린 상태) 누구야, 이 시간에. 누구세요?

문 앞엔 큰 트렁크를 옆에 둔 유진우가 서 있다.

유진우 : 너무 늦었나요?

정희주 : 누구...

유진우 : 혹시, 방 있습니까?

정희주와 유진우 서로를 바라본다. <E> : 멀리서 종소리

유진우 Na;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가 나를 찾고, 내가 그를 찾아 그라나다에 오면서.

정희주, 유진우를 사무실로 안내한다.

정희주 : 들어오세요.

유진우 : (주변을 둘러보며) 미안합니다. 잠을 깨웠나보네요.

정희주 : (책상 위를 정리하며) 아니에요. 공항에 늦게 도착하셨나봐요?

유진우 : 네. 비행기가 연착해서요.

정희주 : (예약 명단을 보며) 어디서 오세요?

유진우 : 바르셀로나요. 출장 왔다가.

정희주 : 네...예약 안 하고 오시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유진우 : 예정 없이 갑자기 오게 돼서요.

정희주 : 아, 네. 며칠이나 묵으세요?

유진우 : 글쎄요. 봐서. 일단 오늘 밤만 할까요?

정희주, 의아한 눈빛으로 유진우를 쳐다본다.

유진우 : 네, 오늘 밤만 하죠.

정희주 : 네. 저희가 4인실 도미토리랑 2인실이 있는데요, 4인실은 20유로구요 2인실은 35유로에요. 조식 불포함이구요. 조식은 6유로 추가..

유진우 : (말을 끊으며) 잠깐. 싱글룸은 없나요?

정희주 : 없는데요.

유진우 : 싱글룸이 하나도 없어요?

정희주 : 싱글룸 찾는 분들은 보통 호텔로 가시니까.

유진우, 기가 찬 듯 희주를 바라본다.

정희주 : 아, 싱글룸 하나 있는데요, 6층에.

유진우 : 그걸로 하죠.

정희주 : 근데 6층인데요?

유진우 : 상관없어요.

정희주 : (미심쩍은 듯) 네.

유진우, 높은 호스텔 계단을 착잡하게 바라본다.

유진우 : 엘리베이터가 없다고요?

정희주 : 오래된 건물이라 설치가 힘들어서요.

유진우 : (기가 차다) 그래요?

정희주 : (불편한 듯) 저기, 짐도 있으신데 다른 호텔로 가시는게...근처 호텔 몇 개 알려드릴게요. 엘리베이터 있는.

유진우 : 아니요. 여기서 묵을겁니다.

정희주 : 그럼 도미토리에서 주무실래요? 바로 윗층이라 편한데. 

유진우 : (마땅찮은 듯) 도미토리는 어떻죠?

정희주 : (211호 문을 열며) 학생들이 자고 있어서요. 살짝 보세요.

돼지우리가 따로 없다.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유진우 : (경악) 아휴...

정희주 : 저기 2층 하나 비었는데.

유진우 : (인상 찌푸리며) 됐습니다. 6층으로 가죠.

유진우, 큰 트렁크를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오른다.

정희주는 그의 비싸보이는 손목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정희주 : (눈치보며) 무거우세요? 도와드릴까요?

유진우 : (애써 웃으며) 아니요. 올라가세요.

유진우, 트렁크를 어깨에까지 올리며 안간힘을 쓴다.

정희주, 6층 방 문을 연다. 뒤따라온 진우, 헉헉댄다.

정희주 : 트렁크를 되게 아끼시나봐요.

유진우 : 아, 좀 위험한 물건이 있어서.

정희주 : 위험한 물건이요?

유진우 : 권총 몇 자루 넣어 왔거든요.

정희주 : (화들짝) 네?! 권총이요?

유진우 : (빙긋 웃곤) 농담이에요. 스크래치 나는게 싫어서. 들어가면 됩니까?

정희주 : (얼떨떨) 네.

방에 들어선 진우, 정리 안 된 가구와 더러운 방 내부 모습에 충격받은 눈치다. 정희주, 뒤늦게 놀라서 눈치를 보며 방 안 곳곳 살핀다.

정희주 : 아, 어떡하죠? 어제 청소를 안 한 것 같은데.

유진우 : (의심쩍다) 과연 어제만 안 했을까요?

정희주 : (창문을 열려 시도) 이 방이 주로 비어 있어서요. 제가 체크를 못 했어요. 아침에 바로 청소하면 되는데. (굳게 닫힌 창문을 흔들며) 아, 이게 왜이래.

정희주, 다른 창문도 열리지 않자 눈을 질끈 감고 절망한다.

정희주 : 그냥 다른 호텔로 가시는 게...오르내리기도 불편하시고.

유진우 : (기가 찬 듯) 다시 내려가라고요? (트렁크 가리키며) 이걸 들고? 어휴, 사양할게요.

정희주 : (애써 웃으며) 힘드시겠죠?

유진우 : (싱긋 웃으며) 죽으라는거죠.

정희주와 유진우, 서로 멋쩍은 웃음만 날린다.

정희주, 6층을 살피며 1층까지 내려온다.

할머니 : (비몽사몽) 누가 왔냐, 이 시간에?

정희주 : 남자 한 명 왔어요, 6층에. 근데 저 아저씨 왜 여기 묵지? 괜히 부담스럽게.

할머니 : 왜.

정희주 : 그냥 딱 봐도 잘 나가는 사람이야, 할머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이에요. 시계도, 트렁크도 완전 다.

할머니 : 니미럴. 그게 다 명품이겠냐? 짝퉁이지.

정희주 : 그런가?

할머니 : 명품 입는 놈이 호텔 놔두고 저기까지 왜 기어올라가.

정희주 : 아, 그러네. 나 왜 짝퉁 생각을 못 했지.

할머니 : (하품) 어여 들어와. 자자.

정희주 : 네.

유진우, 열쇠와 외투를 침대에 던진다.

빗자루로 거미줄을 없애고 창문을 열려 시도한다. 하지만 창문은 꿈쩍도 않고 손잡이만 달랑 떼어진다. 손잡이를 다시 붙여보려 한다.

<E> : 찍찍 쥐소리

유진우, 화들짝 놀라 빗자루를 들어 경계한다. 쥐 한 마리가 쥐구멍으로 들어간다.

유진우 : 얼씨구?

유진우, 화장실에서 휴지를 돌돌 말아와 쥐구멍을 막는다.

<E> : 찍찍 쥐소리

유진우, 또 놀라 빗자루로 휴지를 더 밀어 넣는다.

휴지로 여기저기 먼지를 닦아 보지만 끝이 없다.

유진우 : 하이고, 많다. 씨...

유진우, 먼지 닦은 휴지를 버리려 화장실에 들어간다.

유진우 : 뭔 놈의 휴지통이 하나 없어.

변기에 휴지를 휙 던져 물을 내리고 돌아나가려던 찰나! 불길한 물 소리가 들린다. 물 소리에 돌아보고 나서야 진우 눈에 보이는 메모.

정희주 Na; 수압이 아주아주 약해요! 휴지 조심! 막히면 1층 화장실 쓰셔야 한다는 사실!

유진우 : 아이씨...

서정훈,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진탕 자다가 깼다.

서정훈 : 대표님~

유대표의 침대가 빈 것을 확인하자 당황한다.

서정훈 : 뭐야?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E> : 전화 발신음

유진우 : <E> 여보세요?

서정훈 : 대표님, 어디세요?

유진우, 전화하며 막힌 변기를 뚫고 있다.

유진우 : 하...깼냐?

서정훈 : 흐흐흐, 네. 일어났는데 방에 안 계시더라구요. 어디서 뭐 하세요?

유진우 : 뭐 하냐고? 변기 뚫는다.

서정훈 : <E> 네? 뭘 뚫어요?

유진우 : 나 지금 그라나다에 왔다.

서정훈 : (아무렇지 않게) 그라나다요? 거긴 어디에요. 클럽이에요?

유진우 : 그라나다 몰라? 스페인 남쪽 그라나다.

서정훈 : (이제 상황파악) 네? 그 그라나다요? 지금 진짜 그라나다를 가셨다고요? 아니, 갑자기 말씀도 없이 왜요. 저희 아침에 서울 가잖아요. 9시 비행기인데 거길 왜...아, 너무 황당한데요?

유진우 : (기가 찬다) 하, 황당하다고? 누가 더 황당한지 말해줄까? 내가 갑자기 그라나다에 올 일이 생겨서 내 비서를 깨웠더니 술 처먹고 뻗은 비서가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더라고. (헛웃음) 아, 심지어 욕도 하데? 자는 사람 깨운다고. 그래서 내가 직접 비행기 표 끊고 여기 왔다. 빌어먹을 내 비서가 아~무것도 안 해줘서.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서정훈 :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일정이 다 끝났으니까, 비행기만 타면 되니까 마지막 밤이라서 제가...

유진우 : 누구 마음대로 일정이 끝나. 나 아직 안 끝났는데. 니가 내 상사냐? 니가 결정해? 니가 대표야? (짜증)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서정훈 : 죄송합니다.

유진우 : 너, 서울 돌아가면 바로 사표 써.

서정훈 : (흔들리는 동공) 농담이시죠?

유진우 : 농담인 것 같냐?

서정훈 : 농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진우 : (썩소) 어쩌냐. 농담 아닌데. (전화를 끊어버린다)

서정훈 :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표ㄴ...(안절부절 못 한다)

유진우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서정훈 : 여보세요?

유진우 : 아침 비행기로 튀어와. 와서 연락해.

서정훈 : (안심하며)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한숨 돌린다) 아니, 근데 그라나다는 갑자기 왜 가신거야. 주무시다 말고.

유진우, 뚫어뻥으로 어정쩡하게 변기를 쑤신다. 드디어 물이 내려간다.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데 배터리가 4%. 충전기를 침대 옆 콘센트에 꽂으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들어가질 않는다.

방의 콘센트를 둘러보지만 다 테이프로 막혀있다.

유진우 : (울컥) 하, 진짜 무슨 이따위...

결국 외투와 충전기, 핸드폰을 챙겨서 1층까지 내려간다.

유진우 : (투덜투덜) 계단은 더럽게 길고 난리야. 불은 왜 이렇게 어두워? 굴러 떨어져 뒤지라는 거야 뭐야.

유진우, 1층 주방에 들어와 콘센트를 찾는다.

유진우 : 또 안 들어가 봐라. 내가 여기 아주 폐업시켜버린다. (충전기를 꽂는다)

유진우, 최양주에게 문자한다.

유진우 : <E> 얼마나 걸려?

최양주 : <E> 30분 정도 더 걸립니다.

유진우, 주방을 둘러본다. ‘라면은 공짜’ 메모를 발견한다.

정희주 Na; 라면은 공짜! 보니따만의 특전! 맛있게 드세요!

유진우, 라면을 끓인다.

정민주, 헤드셋을 쓰고 무심하게 주방에 들어온다.

유진우 : 넌 누구니?

정민주 : (쿨하게) 정민주요.

유진우 : 여기 살아?

정민주 : (헤드셋을 벗으며) 네.

유진우 : 아, 그럼 그 주인분이 엄마야?

정민주 : (의아한 듯) 언니죠!

유진우 : (어리둥절) 언니야?

정민주 : 대박. 엄마로 보여요? 우리 언니 27살인데?

유진우 : (무안하다) 아, 그래. 언니한텐 말하지 마라.

정민주 : 아저씨, 저 여기서 춤 출건데 신경쓰지 마세요.

유진우 : 춤?

정민주 : 지금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요. 다음 주에 오디션 보거든요.

정민주, 주방을 활보하며 춤에 취해있다. <E> 빙글뱅글-AOA

라면 먹는 유진우의 뺨을 정민주의 포니테일이 후려치는 등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유진우, 다 먹은 냄비를 싱크대에 두고 돌아선다.

정민주 : (춤추다 말고) 아저씨! 설거지 하고 가셔야죠. 설거지 셀프에요.

유진우 : 저기다 놓고 내일 해도 되잖아.

정민주 : (냉정히) 안돼요.

유진우 : 안 될 건 없지 않니?

정민주 : (재차 강조) 안 돼요. (다시 춤 춘다)

유진우, 그런 정민주가 못마땅하지만 결국 설거지 한다.

<E> 핸드폰 진동. 유진우, 고무장갑을 벗고 핸드폰을 확인한다.

최양주 : <E> 다 됐습니다, 대표님. 확인해보세요.

유진우, 회심의 미소를 띤다. 충전기를 뽑고 서둘러 외투를 챙긴다.

유진우 : (민주 보고 싱크대 가리키며) 나 설거지 다 했다?

유진우,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광장까지 호기롭게 걸어간다.

유진우 Na;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함브라 궁전을 보러 그라나다에 온다. 그러나 나는 다른 걸 보러 여기에 왔다. 알함브라보다 더 신비로운 무엇.

S#3 그라나다 광장 새벽

유진우, 광장에 도착하자 저 멀리 산 위의 성이 불타는 게 보인다.

성으로부터 무엇인가 날아와 진우 바로 앞의 건물을 강타한다. 수많은 파편이 주변에 떨어진다. 유진우, 재빨리 웅크린다.

<E> 말 울음소리. 떨어진 파편을 만져보는데 저만치 연기 속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오는 실루엣이 보인다. <E> 말 발굽소리. 갑옷을 입은 병사가 등에 화살이 5개나 꽂힌 채로 말에 앉아있다. 진우 앞에 말이 선다.

<E> 폭발음, 말 울음소리

멀리서 폭발음이 들리자 말이 놀라 앞발을 들어올린다. 병사가 힘 없이 떨어진다. 말이 달아나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

유진우, 떨어진 병사의 시체를 확인한다.

유진우 Na; 마법. 나는 이 마법을 보러 여기까지 왔다.

광장 분수대 위에 있던 나사르 왕국의 전사가 뛰어내린다. 착지하면서 칼을 바닥에 내리쳐 바닥의 타일이 튀어오른다. 유진우, 놀라 자빠진다. 전사, 다짜고짜 유진우를 베어버린다. 진우의 손에선 피가 흐른다. 유진우의 렌즈가 반짝 빛이 난다.

게임 : ‘치명적 일격을 당했습니다 –100’

      (LV 01 Zinu. 공격력 30, 방어력 50. 무기 없음.)

      ‘당신은 나사르 왕국의 전사에게 죽었습니다. 로그아웃됩니다’

눈앞의 게임 창이 사라지고, 피, 파편들도 없어졌다.

유진우, 흥미롭다는 듯 씨익 웃는다. 유진우의 오른쪽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녹색 빛이 깜빡인다.

최양주 : <E> 이게 뭡니까?

유진우 : (놀랍다) 봤어?

최양주 : <E> 봤어요. 대박인데요, 이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제이원 컴퍼니 사무실에서 최양주, 게임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최양주 : 제가 본 AR 중에 최고인데요? 실제랑 구분이 안 돼요! 이거! (헤드셋을 벗으며) 모니터로 보기엔 완벽한데 실제로 해보시면 어떠세요, 느낌이?

유진우 : 너무 순식간에 당해서...어쨌든 진짜 죽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최양주 : (발을 동동 구르며) 아! 진짜 나도 직접 해보고 싶다. 아! 왜 이거 데모를 굳이 그라나다 배경으로 만들었죠? 서울로 하면 좋잖아!

유진우 : (렌즈를 빼고 살펴보며) 렌즈는 어때?

최양주 : (모니터를 보며) 아직 괜찮아요. 많이 뜨거우세요?

유진우 : 조금.

렌즈에서 전자 신호가 사라진다.

최양주 : <E> 이거 게임을 스마트 렌즈가 못 따라가겠는데요? 진짜 장난 아니다. 진짜. 이거 넉넉잡아서 1년이면 주식 가능하겠는데요? 네? 아니 근데 이거 진짜 혼자 만들었을까요? 진짜 대단하다, 진짜. 천재든지 미친놈이든지 아니면 둘 다든지. 도대체 누구에요, 이거?

유진우 : (아직 생경한 듯) 나도 미치도록 알고 싶다. 그게 누군지.

4시간 전 바르셀로나 호텔. 모르는 번호로 유진우에게 전화 온다. 잠에서 깬 진우는 전화를 받는다.

유진우 : 여보세요?

정세주 : <E> (말을 더듬으며) 저...혹시 유,유,유진우...유진우씨 핸드폰 아,아니에요?

유진우 : (살짝 짜증) 네. 전데요. 누구시죠?

정세주 : (불안에 떨며 말을 더듬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 아니 박사님. ㅈ..제가 뭐라고 불러야 돼요?

유진우 : 하, 뭐든 상관 없습니다. 근데 누구...

정세주 : 제가 차형석 대표를 만났거든요. 여기 와서. 

유진우, 일어나 앉는다.

정세주 : 차형석 대표님. 아시죠? ㅊ,치,친구시잖아요.

유진우 : 근데요?

정세주 : 저한테 100억을 준다는 거에요.

유진우 : 네?

정세주 : 100억이요. 아, 100억 좋죠. 근데...근데 나쁜 사람이에요. 너무. 그래서 안 하려고요. 처음부터 원래 선생님한테 전화하려고 했었거든요. 기사를 봤어요. 바르셀로나에 오신다고.

유진우 : 잠깐만요. 나 지금 이해를 못 하겠는데, 전화한 용건이 뭡니까.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고.

정세주 : 제가 메일을 보냈는데 좀 봐주세요.

유진우 : 나한테 메일을 보냈다고요?

정세주 : <E> 하, 씨... 그 사람한테 팔기 싫은데. 하, 근데 제가 내일까지 결정을 해야 돼서. 그, 그라나다에서 만나요! 보니따 호스텔에서 기다리면 갈게요! 가끔 묵는 곳인데..!

유진우 : 이봐요. 당신 프로그래머에요? 좀 차분하게 얘기할 수 없어요? 이름이 뭐고, 대체 누구고, 개발하고 있는 게 뭔지 좀 순서대로!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 들려요? 여보세요! 아, 뭐...

유진우, 다시 전화를 건다.

<E> (스페인어) 지금 거신 번호는 수신이 불가능한 번호입니다.

유진우, 다시 자려는데 전화 내용이 자꾸 맴돈다.

정세주 <E> ㅊ,차형석 대표님 아시죠? 친구시잖아요. 저한테 100억을 준다는 거에요. 100억이요. 100억 좋죠. 근데 너무 나쁜 사람이에요. 그래서 안 하려고요.

유진우, master라는 이름으로 온 메일을 확인한다. 곧 벌떡 일어나 노트북으로 확인한다.

유진우 : 빌어먹을...

유진우, 초조한 듯 A에게 전화를 건다.

A : 예, 대표님.

유진우 : (노트북을 덮으며) 오랜만입니다. 부탁할 게 있어서요. 차형석이 아직 바르셀로나에 있나요?

A : 차대표요? 잘 모르겠습니다. 공식 일정은 그저께 다 끝나서요.

유진우 : (짐을 챙기며) 여기 와서 그동안 뭐 했는지 좀 알아봐줘요. 어디서 누굴 만났는지 24시간 다 체크해주고요, 그리고 사람 하나 신원 좀 조사해 줘요. 남자고, 프로그래머고, 메일주소만 있고, 차형석과 바르셀로나에서 접촉했다. 이 정보에요.

A : 중요한 문제인가 보죠?

유진우 : 최소 100조원이 달린 문제로 보여요. 지금 예상치로는.

A : 100조원이요.

유진우 : 그러니까 빨리 좀 움직여줘요. 차형석한테 뺏기게 생겼으니까.

A : 네, 알겠습니다. 계속 바르셀로나에 계십니까?

유진우 : 난 지금 그라나다로 갑니다. 물건을 눈으로 확인해야 돼서. (전화 끊는다)

최양주 : <E> 근데 왜 연락이 없죠? 차대표 쪽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유진우 : 지금 비행기 탔을 수도 있고. 그 새끼한테 안 판다고 했으니까 믿어봐야지.

유진우, 렌즈를 다시 끼고 일어난다.

유진우 : 어차피 여기 지금 밤이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날 샐 때까지 레벨업이나 해보자고. 계속 하다 보면 문제점이 보이겠지.

최양주 : <E> 네.

유진우 : 박이사는?

박선호, 사무실로 걸어온다.

최양주 : 아직이요. (박선호를 본다) 어! 저기 오신다.

유진우 : 상황 자세히 설명해줘. 둘 빼고 기밀이야. 모니터링 계속 해주고.

최양주 : <E> 네, 대표님.

박선호 : 뭔 일이야! 유대표 그라나다 갔다며.

최양주 : 밤새 대박 건수가 생겼습니다. 이거 보시죠.

박선호 : 뭔데?

최양주 : (모니터 보여주며) 이게 AR 게임인데요, 이거 보시면은 다른 AR은 다 쓰레기로 보여요.

유진우, 눈을 감았다 뜨자 렌즈가 빛난다.

‘로딩완료. 2번째 로그인 하셨습니다. 1492년의 그라나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라나다는 지금 나사르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전투가 한창입니다.’

유진우, 오른손으로 게임 창을 넘기는 시늉을 한다.

‘아군도 적군도 없습니다. 당신은 무조건 살아남아 전사로 거듭나야 합니다. 금화는 퀘스트를 수행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퀘스트는 마을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무기가 없습니다. 무기부터 갖춰야 합니다. 레벨 1에게는 기본 무기가 주어집니다. 무기를 찾으러 떠나세요. (무기 있는 곳까지 안내한다) ’

유진우, 게임의 길 안내를 받아 음식점에 들어선다.

음식점 직원 : Welcome! We have a seat here.

유진우, 왼손을 들며 “잠깐” 이라는 제스쳐를 보인다. 화장실로 향한다.

음식점 직원 : Oh, you want to use a restroom first. Yeah, that way.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무기를 찾으세요.’

유진우, 화장실 곳곳을 살핀다. 세면대 옆 철고리를 잡아당기자 천장이 열리며 ‘녹슨 철검’이 내려온다.

‘녹슨 철검 : 공격력 50, 내구력 50’

무기를 드디어 손에 넣은 진우, 신기해한다.

‘레벨 1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무기를 업그레이드 하려면 레벨을 올리세요.’

최양주, 박선호가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양주 : 어우, 와, 소름돋아. 와...

유진우, 칼을 만져보고 있다.

박선호 : <E> 잡은 감각이 어때?

유진우 : 손에 착 감기는데?

최양주 : (감격하며) 대박...오 맨...

유진우, 칼을 휘둘러본다. 소변을 보던 취객의 눈에 진우는 허공에 팔을 휘두르는 이상한 사람으로만 보인다.

취객 : (스페인어) 이봐! 당신 혼자 뭐해? 취했구만 저놈.

유진우, 취객의 말을 무시하고 화장실을 나선다.

음식점 직원 : Hey! I made a seat here.

유진우 : (급히 나가며) Sorry, I will come back other time.

유진우, 음식점 문을 열기 전에 칼을 한 번 더 휘둘러보고 만족한 듯 나간다.

음식점 직원 : (황당) What?

다시 광장 분수대 앞으로 돌아온 진우.

유진우 : 이쯤이었나?

최양주 : <E> 네, 그쯤으로 뛰어내렸습니다.

유진우 : (자리 잡으며) 이 쯤...

진우가 자리를 잡자 나사르 왕국의 전사가 아까와 같이 뛰어내린다.

최양주,             박선호 : 오우! 야...

실제 같은 게임 상황에 모두 놀란다. 진우가 전사의 칼을 막는다. 전사의 눈빛이 날카롭다.

최양주 : 와! 저, 저 눈빛봐 저거. 오금이 지리잖아요. 진짜! 와 씨...

박선호 : 와...기가 막힌다. 진짜 이거...

전사가 칼을 내치자 진우가 나가떨어진다.

최양주 : 어디 갔어, 아까 걔.

유진우, 주위를 둘러본다. 갑자기 전사가 분수대 위에서 뛰어내려 공격을 가한다.

최양주, 박선호 :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어어! 피해! 피해!

‘치명적 일격을 당했습니다 –100. 당신은 나사르 왕국의 전사에게 죽었습니다. 로그아웃 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란 진우. 몸을 일으켜 앉는다.

유진우 : (숨을 몰아쉬며) 이제 알겠다. 이제 좀 적응이 되네. 다시. (일어선다)

유진우, 눈을 감고 칼을 다시 거머쥔다. 나사르 왕국 전사가 아까와 같은 레퍼토리로 등장한다. 진우는 전사와 싸우다 ‘녹슨 철검’이 부러진다. 부러진 철검의 파편이 주변 건물로 날아가 꽂힌다.

‘녹슨 철검이 부러졌습니다. 무기가 없습니다. 치명적 일격을 당했습니다 –100. 당신은 나사르 왕국의 전사에게 죽었습니다.’

최양주, 박선호는 모니터링하며 감탄한다.

박선호 : 아니, 유대표! 너 너무 느리네. 검 스피드가 비교가 안...너 옛날에 검도도 하지 않았냐?

최양주 : 이제 40을 바라보시니까요. 뭐, 체력도 이제 꺾어지실 때죠 뭐.

유진우 : 시끄러!

최양주 : 아, 내가 갔어야 됐는데. 레벨 하나 넘는데 1년이 넘게 걸리겠어요.

유진우 : (이를 악물며) 입 닥쳐.

유진우, 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며 로그인한다.

‘4번째 로그인하셨습니다. 무기가 없습니다. 무기를 장착하세요.’

유진우, 다시 무기를 구하러 음식점에 들어선다.

음식점 직원 : Hey, you are back! If you wanna find a table...

직원의 말을 무시하고 화장실로 향하는 진우.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무기를 구한다.

음식점 직원 : Hey! (스페인어) 또 그냥 가? 뭐야? 계속 화장실만 쓰고 가?

유진우, 전사와 싸우고 철검이 부러지고 다시 무기를 구하러 음식점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반복한다.

최양주와 박선호는 유진우가 계속 죽자 안타까워한다.

최양주 : 대표님 사태 파악이 전혀 안 되고 있어. (칼 휘두르는 시늉) 떨어질 때 이러고 떨어지죠? 칠 때 이렇게 친다고.

박선호 : 몇 번을 죽냐! 똑같은 애한테!

유진우, 계속 싸운다. 최양주, 커피와 먹을거리를 가져온다.

진우는 전사와 싸우다 주변의 차가 있는 곳까지 밀린다. 전사는 차 위로 착지하고 차의 모든 유리창이 깨진다.

최양주 : 봤어요? 지금? 현실 지형지물 이용하는 거?

박선호 : 와, 미쳤구나. 진짜.

전사가 차에서 뛰어내리며 진우를 공격한다. 진우, 칼로 막아보지만 칼은 두 동강 나고 또 죽는다.

그 옆에서 자던 취객, 허공을 응시하는 진우가 이상하게 보인다. 진우 앞의 차는 멀쩡하다. 유진우, 점점 더 경이롭기만 하다.

무기를 다시 구하러 음식점에 온 진우, 마감하고 있는 음식점 문을 두드린다.

음식점 직원 : (스페인어) 저 놈 또 왔어?

다른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

유진우 : Thank you.

음식점 직원 : Hey! We were closed.

유진우 : 잠깐만 들어갈게요. (영어)

음식점 직원 : We were closed, okay? I mean you want to go to restroom, go other else. 아니 봐줬더니 왜 꼭 여기 와서. (영어)

유진우 : (돈을 쥐여주며) Just open for 1 more hour. Okay?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침이 된다. 유진우, 광장에서 혼자 뒹굴고 있다. 벤치에 앉은 노인들, 그를 이상하게 본다.

유진우, 전사와 치열히 싸우다 드디어 공격에 성공한다.

박선호 : 오케이! 좋았어!

나사르 왕국 전사와 유진우, 마주보고 있다.

유진우 : 그래, 덤벼! 이 자식아.

전사와 유진우는 서로에게 달려든다. 전사가 뛰어오르고 진우는 그를 베어버린다.

전사, 분수대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다.

‘치명적 일격이 성공했습니다 50-’

박선호 : (주먹을 불끈 쥐며) 오케이! 좋았어!

‘나사르 왕국의 전사를 해치웠습니다. 경험치 +30, 공격력 +5, 방어력 +5.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박선호와 최양주, 환호한다.

유진우 : 와우! (주변을 가리키며) 봤어? 봤어?

‘전리품을 획득하세요. 전사의 열쇠.’

분수대 물에 떠 있는 열쇠를 거머쥐는 진우.

‘전사의 열쇠를 얻었습니다. 경험치 +30. 열쇠로 레벨2에 맞는 무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진우,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른다. 쥐고 있던 칼이 사라진다.

박선호 : <E> 유대표, 이거 아무리 봐도 단점이 없어. 너무 중독적인게 문제지. 야, 너 이거 뉴워드에 뺏기면..!

유진우 : (말 끊으며) 배터리 없어. 들어가서 통화해요.

박선호 : <E> 오케이!

유진우 Na; 미래가 눈앞에 그려졌다. 전 세계인들이 이 놀라운 마법을 즐기는 모습이. 서울에서, 북경에서, 뉴욕에서, 파리에서. 그리고 그라나다는 이제, 알함브라 궁전이 아닌 마법의 도시로 유명해진다. 이곳은 전 세계 유저들의 성지가 될 것이다.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1호점이 가장 유명세를 타듯이.

유진우, 몸을 일으켜 앉는다. 오른쪽 귀에서 이어폰을 뺀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유진우 Na; 그 상상을 하자 이걸 놓치게 될까, 두려워 우울해질 정도였다.

S#4 호스텔 아침

정희주, 스쿠터를 타고 호스텔에 온다. 유진우와 마주친다.

정희주 : 안녕히 주무셨어요? 산책 다녀오셨나봐요.

유진우 : 네.

정희주 : 6층부터 청소 시키려고요.

유진우 : (시큰둥) 거 잘 됐네요.

유진우, 호스텔로 들어선다. 정희주, 무안하다.

유진우, 터덜터덜 계단을 오른다.

유진우 Na; 그라나다에서 만나자며 그는 이 호스텔 주소를 보냈다. 자신이 가끔 묵는 곳이라며. 과연 여기 나타나기는 할까? 차형석과 이미 계약이 끝난 게 아닐까.

침대에 털썩 앉은 진우, 충전기를 꽂아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유진우 : 아이...빌어먹을.

유진우, 충전하러 1층 주방까지 내려간다.

주방에 도착해 진우는 충전기를 꽂으려 한다. 라면을 끓이던 청년이 인사를 한다.

청년 : 안녕하세요.

유진우 : 네.

청년 : 아저씨, 죄송한데 이거 잠깐만 봐주실래요? 배가 너무 아파가지고.

유진우 : (시큰둥) 그래요.

청년 : 1분만 더 끓이시면 돼요. (배를 잡고 나간다)

유진우, 라면을 보려던 찰나 A에게 전화가 온다.

유진우 :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받으며) 여보세요.

A : <E> 예, 접니다.

유진우 : 어떻게 됐어요?

A : 차대표가 어제부터 모든 스케줄을 취소했습니다. 일정이 많았는데도요.

유진우 : 그럼 지금 어디있는거죠?

A :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유진우 : (눈을 질끈 감으며) 아! 이미 계약한 거 아닌가.

유진우, 식탁에 앉는다.

A :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 친구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요.

유진우 : 뭐 좀 찾았어요?

A : 예, 몇가지요. 불법을...좀 썼습니다. 메일을 해킹했는데요.

유진우 : 그래서요.

A : 중요한 것부터 빨리 말씀드릴게요. 프로그래머 이름은 정세주. 만 17세. 아직 미성년자고요.

유진우 : 미성년자라고요?

<E> 화재 경보기

A: <E> 무슨 소리죠?

유진우, 뒤를 돌아보니 라면 냄비에서 희뿌연 연기가 난다. 냄비 바로 위에 화재 경보기가 있다.

유진우 : 아이, 씨...

유진우, 가스 불을 끄고 환기시킨다.

유진우 : 밖으로 나갈게요. 얘기해요.

정희주, 사무실에서 돈을 세다 경보음을 듣고 달려 나온다. 유진우를 마주친다.

정희주 : 어! 뭐에요?

유진우 : (주방을 가리키며) 화재경보기. 연기도 별로 안 나는데 울리네요.

정희주 : 아, 그게 되게 민감해서요. 거기 메모 붙여놨는데. (주방으로 달려간다)

유진우, 밖으로 나온다.

유진우 : 네. 말해요. 네.

A : 네,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그래서 계약을 하려면...

전화가 지직거린다.

유진우 : 여보세요? 안 들려요? 여보세요. 아이..

유진우, 다시 호스텔로 들어간다.

정희주, 대걸레를 들고 가스레인지 옆으로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경보기를 끄려고 한다.

유진우, 충전기를 뽑고 핸드폰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려 한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다.

유진우 : (다시 주방으로 들어오며) 아, 이런 씨...그것 좀 빨리 끌 수 없어요?

정희주 : 끄고 있는데요?

유진우 : (신경질내며) 아 시끄러워서 통화를 할 수가 없잖아!

정희주 : (어리둥절) 나가서 하시면 되잖아요.

유진우 : (버럭) 아 나가서 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빨리 좀 끄라고요! 뭐 해요!

정희주, 갑작스러운 진우의 성화에 놀란다.

유진우 : (주방을 서성이며) 아이 진짜 씨...여보세요? 예. 그래서요. 미성년잔데.

정희주, 어이가 없다.

유진우 : 예? 뭐라고요?

정희주 : 근데요. 제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선생님이 여기 계셨잖아요.

유진우 : 뭐요?

정희주 :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저 방금 듣고 온 건데?

정희주와 유진우 서로를 노려본다. 화재 경보기가 멈춘다.

유진우 : 다시 전화 할게요. (이어폰을 끄고 희주에게 다가간다) 왜 당신한테 화를 내냐고? 당신이 이 집 주인이니까. (버럭) 이 거지같은 집 주인이 당신이니까!

정희주 : (움찔) 네..?

유진우 : 당신 한 마디로 양심이 없어. 나는 사업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나는 당신 같은 얼치기 장사꾼들을 가장 참을 수가 없거든. 안일하고, 게으르고. 최소한 방을 빌려주고 돈을 받겠단 의지가 있으면 뭐 하나 내 놓을 게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뭘 내 놓을 게 있어요? 아, (라면을 집어들며) 꼴랑, 요 라면 하나? (라면을 집어던진다)

정희주, 또 움찔한다.

유진우 : 아니, 뭔 놈의 방의 변기는 번번이 뚫어가면서 써야 되고 방에 쥐구멍이 있질 않나. 아니, 창문을 열리지도 않아서 질식사 할 지경에 빌어먹을 계단을 왜 이렇게 높아.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요즘 어딨어? 아니 빌어먹을 최소한 전원 꽂이는 있어야 될 거 아냐. 아 핸드폰 충전할 때 마다 1층까지 내려왔어. 이 꼬라지 좀 봐 좀!

정희주 : (울먹이며) 그래서 제가 다른 호텔로 가시라고...

유진우 : (희주에게 다가서며) 잘 들어요. 내가 지금 100조짜리 프로젝트에 관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놈의 충전기가 내 방에선 안 되고, 이 놈의 바보 같은 경보기가 불도 안 났는데 울려서 만약 내가 이걸 놓치면. (손가락질) 다 당신 탓이야.

정희주 : 아니, 그게 왜...죄송합니다. 근데 말씀을 좀 막 하시네요. 선생님도 너무 예의가 없으신 것 같아요.

유진우 : (희주를 째려보곤) 하, 손님에 대한 예의가 없는 집에서 예의를 찾는 게 우습네요.

유진우, 다시 전화를 걸고 주방에서 나온다.

정희주, 주저 앉아 운다.

유진우 : 여보세요?

A : <E> 예, 너무 시끄럽네요.

유진우 : 아, 미안해요. 계속 해요.

A : 그러니까 요지는, 그 프로그래머가 아직 미성년자고, 보호자 동의 없이는 차대표도 계약을 못 한다는 겁니다.

유진우 : 보호자가 그럼, 부모는요?

A : <E>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보호자는 누나더라구요.

유진우 : 누나?

A : 예. 정희주 라는 여잔데요. 그라나다에서 보니따라는 한인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희주, 서럽게 흐느낀다.

유진우 : 어디요?

A : 보니따 호스텔이요.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유진우, 눈 앞에 보니따 호스텔 안내문이 들어온다. 울고 있는 정희주를 쳐다본다.

A : <E> 그라나다에 계시면 그 집에 먼저 가보시죠. 누나를 설득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권리가 있으니까요.

유진우 : (희주를 응시하며) 그렇겠네요.

A : <E> 누나랑 주고받은 메일 몇 개 확인했는데,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유진우 : (주방 문에 기대며) 그래요?

정희주, 진우를 노려본다.

유진우 Na; 이렇게 마법은 희주의 인생에도 시작됐다. 희주는 이제 세상을 바꿀 혁신적 미래 기술의 권리를 갖게 됐다.

정희주, 자신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진우가 어이 없다.

유진우 Na; 물론 동화 속 공주들이 늘 그렇듯, 아직 자신의 신분도 모르고, 거지같은 집에 살며, 늑대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었으나.

극본 송재정 작가님. 

나퐁듀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