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May

S#1 호스텔 아침

유진우 : 왜 당신한테 화를 내냐고? 당신이 이 집 주인이니까. (버럭) 이 거지같은 집 주인이 당신이니까!

정희주 : (움찔) 네..?

유진우 : 당신 한 마디로 양심이 없어. 나는 사업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나는 당신 같은 얼치기 장사꾼들을 가장 참을 수가 없거든. 안일하고, 게으르고. 최소한 방을 빌려주고 돈을 받겠단 의지가 있으면 뭐 하나 내 놓을 게 있어야 될 거 아니야? 뭘 내 놓을 게 있어요? 아, (라면을 집어들며) 꼴랑, 요 라면 하나? (라면을 집어던진다)

정희주, 또 움찔한다.

유진우 : 아니, 뭔 놈의 방의 변기는 번번이 뚫어가면서 써야 되고 방에 쥐구멍이 있질 않나. 아니, 창문을 열리지도 않아서 질식사 할 지경에 빌어먹을 계단을 왜 이렇게 높아.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요즘 어딨어? 아니 빌어먹을 최소한 전원 꽂이는 있어야 될 거 아냐. 아 핸드폰 충전할 때 마다 1층까지 내려왔어! 이 꼬라지 좀 봐 좀!

정희주 : (울먹이며) 그래서 제가 다른 호텔로 가시라고...

유진우 : (희주에게 다가서며) 잘 들어요. 내가 지금 100조짜리 프로젝트에 관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놈의 충전기가 내 방에선 안 되고, 이 놈의 바보 같은 경보기가 불도 안 났는데 울려서 만약 내가 이걸 놓치면. (손가락질) 다 당신 탓이야.

정희주 : 아니, 그게 왜...죄송합니다. 근데 말씀을 좀 막 하시네요. 선생님도 너무 예의가 없으신 것 같아요.

유진우 : (희주를 째려보곤) 하, 손님에 대한 예의가 없는 집에서 예의를 찾는 게 우습네요.

유진우, 다시 전화를 걸고 주방에서 나온다. 정희주, 주저앉아 운다.

유진우 : 여보세요?

A : <E> 아, 너무 시끄럽네요.

유진우 : 아, 미안해요. 계속 해요.

A : 그러니까 요지는, 그 프로그래머가 아직 미성년자고, 보호자 동의 없이는 차대표도 계약을 못 한다는 겁니다.

유진우 : 보호자가 그럼, 부모는요?

A : <E>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보호자는 누나더라구요.

유진우 : 누나?

A : 예. 정희주 라는 여잔데요. 그라나다에서 보니따라는 한인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희주, 서럽게 흐느낀다.

유진우 : 어디요?

A : 보니따 호스텔이요.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유진우, 눈 앞에 보니따 호스텔 안내문이 들어온다. 울고 있는 정희주를 쳐다본다.

A : <E> 그라나다에 계시면 그 집에 먼저 가보시죠. 누나를 설득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권리가 있으니까요.

유진우 : (희주를 응시하며) 그렇겠네요.

A : <E> 누나랑 주고받은 메일 몇 개 확인했는데,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유진우 : (주방 문에 기대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요?

청년 : (주방으로 들어오며) 경보기 울렸어요? 뭔 소리가...

정희주, 서둘러 눈물을 닦고 가스레인지 옆에서 내려온다.

유진우 : 다시 전화하죠. (블루투스 이어폰 끈다)

청년 : (냄비 확인) 아! 아...이거 다 탔네. 아저씨 이거 제가 좀 봐달라고..!

유진우, 골똘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

유진우 : (능청맞게) 어? 뭐지? (원맨쇼 시작한다)

청년 : 예?

유진우 : 아니,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있었지? 혹시 자기가 라면 좀 봐달라고 했는데 내가 태운거야? 그리고 화재 경보가 울렸고...

정희주, 미친놈 바라보듯 진우를 본다.

유진우 : 설마 내가 막 시끄럽다고 성질도 부리고 했나..?

청년, 어리둥절하다. 정희주, 진우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유진우 : 설마. (희주에게 다가서며) 설마 그래서 지금 우는 거 아니죠? 내가 성질 부려서.

정희주, 그런 진우를 벌레 대하듯 피한다.

유진우 : 에이 내가 그랬을 리가. 만약 그랬다면 사람도 아니잖아. 그치? 아, 아냐, 아냐. 아니야. 아! 그랬을 수도. 사실은 내가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서.

정희주, 어이가 없다.

유진우 : (희주 눈치 보며)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노려보네...(청년 보고 썩소지으며) 안되겠다, 그치?

유진우, 머쓱해져 충전기 뽑고 서둘러 주방을 벗어난다. 희주는 진우를 끝까지 노려본다.

청년 : 지금 뭐라 하시는 거에요?

유진우, 밖으로 나온다.

유진우 : 아니, 여기가 집이면 집에서 만나자고 말을 했어야지! 자식이...

유진우, 이제야 ‘보니따 호스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착잡하기만 하다.


S#2 호스텔 조식

MWC 행사장의 모습이 나온다.

앵커 : (스페인어) 세계 최고의 IT박람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가 어제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했습니다. 올해는 190개국에서 2300개의 기업이 참가했으며 개막 첫날 입장권이 모두 매진되며 성황을 이뤘는데요. 첫날부터 단연 주목받은 건 한국 제이원의 스마트 콘택트 렌즈였습니다. 스마트렌즈는 혁신적인 편의성과 육안에 근접한 초고해상도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증강현실을 일상에 구현할 가장 완벽한 디바이스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정세주, TV를 틀어놓고 가방에 짐을 싸고 있다. 방 곳곳엔 게임 캐릭터 디자인이 널려있다.

유진우 (TV 인터뷰) : 어...내년 3분기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올해 12월 정식 출시를 합니다. 일정이 늦어지는 이유는 디바이스 문제가 아니라, 컨텐츠 준비 시간이 필요해서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앵커 : (스페인어) <E> 한국 제이원의 CEO 유진우씨는 스마트 렌즈가 증강현실의 대중화를 이루게 할 최초의 디바이스라 자신하며 구체적인 생산 계획을 공개했는데요.

기자 : <E> 컨텐츠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뭡니까?

클로즈업 된 TV 속 유진우의 얼굴을 보던 정세주, 가방을 메고 TV를 끈다. 주방으로 내려온다.

A : <E> 이름은 정세주. 직업학교 졸업했고 지금은 백수고요. 만 18세 생일이 두 달 남았습니다.

주방에서 누나는 설거지, 할머니는 파를 다듬고 있고 민주는 공부한다. 투숙객은 서서 요리하고 있다.

할머니 : (나가려는 정세주를 보며) 지금 가는 거냐?

정세주 : (의기소침한 듯) 네.

정민주 : (책을 보면서 쿨하게) 안녕.

할머니 : (걱정)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연락 자주 하고. 응?

정세주, 대답하지 않는다.

할머니 : (큰 소리로) 응?

정세주, 묵묵부답으로 밖으로 나간다. 정희주가 설거지하다 말고 따라간다.

할머니 : 으이구, 니미랄. 입에 지퍼를 채웠나.

투숙객 : (할머니 보며) 손자이신가 봐요.

할머니 : (파 다듬으며) 손자가 아니라 웬수요, 웬수.

A : <E> 3남매 중에 둘째입니다. 어, 할머니가 계시고요.

정세주, 묶어둔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정희주 : (현관 밖으로 나오며) 조심하구. 전화 좀 받아. 알았지? 언제와?

정세주 : (뒤도 안 돌아보고 출발하며) 봐서.

정희주 : 문자라도 한 번 씩 해. 응?

정희주, 멀어지는 세주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다.

그랬던 보니따 호스텔 현관 앞, 아침이 되면서 희주의 모습은 흐려지고 노천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진우가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A와 통화중이다.

A : <E> 친구 만나러 바로셀로나로 간다고 집을 나가서 아직까지 안 돌아오고 있는거죠.

유진우, 핸드폰으로 정세주의 사진들을 넘겨보고 있다.

유진우 : 그럼 집 떠난 지 얼마나 된 거죠?

A : <E> 일주일째입니다.

유진우 : 가족들은 걱정 안 하나?

A : <E> 학교도 졸업했고, 남자애니까요. 메일 내용 보면 워낙에 집에서 내놓은 놈 같아요.

유진우, 호스텔 초인종을 누르는 여행자에게 집중한다. 희주가 현관을 열고 나오자 서둘러 등을 돌리는 진우. 몰래 희주를 쳐다본다.

정희주 :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여행자 : 아니요, 아니요.

정희주 : 찾는데 어렵진 않으셨어요?

여행자 : 아니요. 잘 찾아왔어요. 블로그 보고 왔어요.

정희주 : 아, 그래요? 다행이다. 세비아에서 오시는 거죠?

여행자 : 네네네.

유진우 : (등 돌린 채) 누나는 어떤 여자죠?

A : <E>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고 누나가 호스텔을 맡아서 하고 있고요.


정희주 : (조식을 나르며) 민주야, 학교 늦어. 얼른 나와!

투숙객들 조식 먹으려 주방 식탁에 앉아 있다. 할머니는 분주히 조식 준비한다.

A : <E> 하는 일이 많더라구요. 어, 한인 호스텔에서 밥도 팔고.

튜숙객 1 : (식탁에 앉으며) 안녕하세요.

정희주 : (상냥히) 어서와요.

정희주, 그라나다 가이드를 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며 걷는다.

정희주 : 저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성 니콜라스 전망대가 있습니다. 멋진 전경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ánimo! (마이크에 대고) 네, 이곳은 성 니콜라스 전망대입니다. 확 트인 전경으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을 거닐며) 12마리의 사자상이 분수대를 받치고 있는 이곳은 코마레스 궁전입니다.

A : <E> 어, 투어 가이드도 하고.

정희주, 사무실에서 스페인어 사전을 보며 번역하고 있다.

A : <E> 번역일도 합니다.

김상범 : Maestro! (마에스트로에게 기타 스케치를 보여주며) Está bien?(이거 괜찮아요?)

마에스트로 : (기타들고 가는 희주에게) momento? (좀 볼까?)

정희주 : Sí (기타를 건넨다)

마에스트로 : (스페인어) 잠깐만. (기타 옆을 문지르며) 여기를 좀 더 부드럽게.

정희주 : (끄덕이며) Sí, maestro.

A : <E> 수제 기타 공방에서 일도 하고요.

유진우 : 아 무슨 하는 일이 그렇게 많죠?

A : 살림이 넉넉하진 않겠죠. 식구 중에 돈 벌 사람이 그 누나밖에 없을 겁니다. 할머니에 미성년 동생들뿐이니까요.

유진우, A의 설명을 듣고 정희주를 바라본다. 정희주, 아까 온 여행자 응대중이다.

정희주 : 피곤하실 텐데,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행자 : 아예, 감사합니다.

정희주와 여행자, 함께 호스텔로 들어간다. 유진우, 정희주가 들어가고 나서야 돌렸던 등을 편다.

유진우 : 차형석은? 아직 식구들하고 접촉 안 한 거 확실하죠?

A : 예, 미성년자인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유진우 : 말 안 했겠죠. 어린앤줄 알면 얕볼까봐. 나한테도 말 안 했으니까. 또 정보가 있어요?

A : 현재는 여기까지입니다.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유진우 : 수고해요. 내가 들어가서 분위기 좀 살펴야겠네요.

유진우, 블루투스 이어폰을 끄고 골똘히 생각한다.


정희주, 투숙객들에게 밥을 나눠준다. 그런 희주를 진우는 주방 밖에서 바라보며 기웃거린다.

정희주 : (민주에게) 너 얼른 밥 먹어.

A : <E> 친할머니, 누나, 여동생이랑 같이 삽니다.

유진우 : (결심한 듯 들어서며) 좋은 아침입니다!

정희주, 진우를 째려본다.

투숙객들, 진우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유진우 : (민주에게) 안녕!

정민주 : (쿨하게) 안녕하세요.

할머니 : 누구시지?

유진우 : 아, 어제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601호에.

할머니 : 아! 6층 손님이시구만? 아침 드시게?

유진우 : 네. 여기 그냥 먹고 돈 내면 되나요?

할머니 : 그럼그럼. 아무 데나 앉아요.

유진우 : 예!

유진우, 식탁에 앉는다.

유진우 : 아침 메뉴가...

할머니 : 그냥 주는 대로 먹는겨. 메뉴가 어딨어!

유진우 : 아, 네. 좋네요! 고를 필요 없어서. 고르는 것도 사실 꽤 피곤하거든요.

할머니 : 그래서 내가 메뉴를 단위로 한거요. 댁같은 양반들 편하라고!

유진우 : (싹싹하게) 아,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선택장애가 있어서요.

정희주, 진우의 말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는다. 진우 앞에 밥과 홍합미역국을 놓는다.

유진우 : 이야, 홍합미역국! 흐어, 맛있겠는데요?

정희주 : 우리 손녀딸 특기요, 그게.

유진우 : 아, 그래요? (계란말이 가져다주는 희주 보며) 잘 먹을게요.

정희주, 싸늘한 표정으로 계란말이를 탁! 놓고 돌아선다. 유진우, 머쓱하다.

투숙객 1 : 어제 오셨어요?

유진우 : 네. 새벽에요.

투숙객 1 : 근데 왜 어디서 뵌 것 같죠?

유진우 : 나를요?

투숙객 1 : 네. 되게 낯이 익은데요.

투숙객 2 : (진우 보며) 나두.

유진우 : 글쎄? 여행지에서 스쳤나?

투숙객 1 : 어디서 오시는 길인데요?

유진우 : 바르셀로나요.

투숙객 1 : 어? 그럼 아닌데?

할머니 : (밥 들고가며) 희주야! 얼른 앉아.

정희주 : (밥통을 닫으며) 네.

유진우 : (옆 자리 의자를 빼며) 여기, 비었는데.

정희주, 진우를 무시하고 할머니 옆자리에 앉는다.

투숙객 2 : 아저씨. 바르셀로나 어때요? 모레 거기 갈 건데.

유진우 : 글쎄. 난 출장 온 거라서 별로 본 게 없어서.

투숙객 1 : 기차 타고 오셨어요?

유진우 : 아니요. 비행기.

투숙객 2 : 야, 우리도 비행기 타자.

투숙객 1 : 그거 비싸대!

투숙객 2 : 아니야. 다 비행기 타고 가.

투숙객 1과 2, 서로 티격태격한다. 유진우, 희주의 눈치를 보며 밥 먹는다.

할머니 : 근데 세주는 왜 전화를 안 받냐? 전화가 안 돼!

정희주 : 핸드폰이 깨졌대요.

할머니 : 연락 왔어?

정희주 : 네. 어제 공중전화로 했더라구요.

할머니 : 아이그, 핸드폰은 왜 또 깨먹었대. 언제 온대?

유진우, 할머니와 정희주 대화를 듣기 위해 먼 곳에 있는 반찬을 집으려 한다.

정희주 : 오늘 온대요. 어젯밤에 야간열차 탄다고요, 픽업 간댔더니 오지 말래.

할머니 : 야간열차면 몇 시 도착이냐?

정희주 : 8시요.

유진우, 시계를 보니 7시 20분이다.

유진우 : (서두르며) 잘 먹었습니다.

할머니 : 아니, 뭘 먹어. 이제 숟가락 들어놓고?

유진우 : (일어서며) 아이, 제가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돈은 지금 드리면 되나요?

유진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센다.

할머니 : 아이, 되기는 되는데. 먹질 않고?

정희주 : (빤히 쳐다보며) 되게 맛 없으신가봐요?

유진우 : 아니요. 너무 맛있는데 제가 시간이 없어서. 나도 아쉽네요. (동전을 놓으며) 맛있게들 먹어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유진우, 서둘러 나간다.

할머니 : 뭐가 저렇게 급해, 갑자기?

정희주, 진우가 놓은 동전을 바라보며 화를 삭인다.


유진우, 손목시계를 보며 걸어간다.

음식점 직원 : Good morning!

유진우 : Good morning.

음식점 직원 : (영어) 오늘 밤에도 우리 바에 와요. 화장실 마음껏 써도 돼요.

유진우 : I won’t. (영어) 내가 이제 거기 갈 레벨이 아니거든.

유진우, 택시를 잡지만 안 잡힌다. 마침 서정훈이 차 타고 온다.

서정훈 : 대표님! (차에서 내리며) 대표님, 저 왔습니다. 저 진짜 빨리 왔죠. 새벽 첫 비행기로 날아왔습니다.

유진우, 한 대 칠 기세다.

서정훈 : (움찔) 아, 아침도 못 먹고 진짜. 흐흐흐. 차 이걸로 렌트했는데 괜찮으세요?

유진우 : 차키는?

서정훈 : 아이, 어디가시게요. 제가 운전 할게요.

유진우 : 됐고. 너는 할 일 있어. 들어가서 짐 풀고 꽃다발 좀 주문해.

서정훈 : 꽃다발이요? 어디로 보냅니까?

유진우 : 나 묵는 호스텔 주소로. 주인아가씨 앞으로 보내면 돼. 이름은 정희주야. 내 명함 넣어서. (차에 탄다)

서정훈 : (뭔가 깨달은 듯) 아, 아아아!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오밤중에 왜 혼자 그라나다까지 오셨나 했더니.

유진우 : 뭐?

서정훈 : 근데 대표님,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유진우 : 뭘.

서정훈 : 대표님 지금 소송중이십니다. 아직 이혼서류에 도장도 안 찍으셨거든요. 여자는 당분간 좀 자제를 하시는 게...!

유진우 : (이를 악물고) 이 자식이!

서정훈 : (움찔) 소송에 불리한 일은 하지 마시라는 거죠. 여기도 한국 사람들 많이 와요. 보는 눈 많습니다.

유진우 : 회사에 중요한 파트너가 될 여자라 그런다. 미남계라도 써야 될 상황이라.

서정훈 : 미남계요? 그럼, 제가 해야죠.

유진우 : (기가 찬다) 니가 미남이야?

서정훈 : (당연한 듯) 제가 낫죠?

유진우 : (헛웃음) 정훈아. 생각을 해봐. 우리 둘 중에 꼭 누군가가 미남계를 써야 된다면 누가 먹히겠어. 어? 우리 둘 중 말이야.

서정훈 : 어쨌든 대표님은 아직 법적인 유부남이시라니까요. 싱글이고 한 살이라도 어린 제가 하는 게 낫죠.

유진우 : (손가락질) 싱글이고 뭐고 넌 미남이 아니잖아!

서정훈 : (너털웃음) 왜요. 저희 엄마는 제가 상계동 꽃미남이라는데요? (꽃받침)

유진우 : (단호하게) 정훈아. 인류 역사상 인종과 문화권을 망라하고 단 한 번도 너 같은 스타일이 미남으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어머니께 말씀드려. 모성애도 역사를 부정할 순 없다고.

서정훈 : 이래서 대표님이 적이 많으신 겁니다. (헛기침)

서정훈, 뒷자리에서 큰 트렁크를 꺼낸다.

유진우 : (트렁크 보며) 그게 니 짐이냐?

서정훈 : 예.

유진우 : 엄청 크네. (싱긋 웃으며) 고생하겠다.

서정훈 : 네?

유진우, 대답 않고 출발한다.

서정훈 : 다녀오십쇼, 대표님!

서정훈, 6층까지 이어진 계단을 올려다보고 넋이 나간다. 옆 청소부에게 말을 건다.

서정훈 : Where is elevator?

청소부 : Elevator? No. No.

서정훈 : No elevator?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청소부 : No.

서정훈, 착잡하게 계단 위를 바라본다.


S#3 그라나다역

유진우, 차 타고 그라나다역에 가고 있다.

유진우 :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통화하며) 어제 야간열차타기 직전에 나한테 전화한 거였어. 공중전화로. 핸드폰은 고장났고. 그래서 연락이 끊긴거야.

박선호 : (사무실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와~ 다행이다. 아 난 또 그새 마음 변해서 형석이한테 도로 간 줄 알았지. 오긴 오는구나!

유진우 : 지금 기차역으로 가고 있어. 먼저 만나서 얘기하려고. 집에서 만나면 될 일도 안 되게 생겨서.

박선호 : <E> 왜?

유진우 : 걔 누나가 나를 미워해.

박선호 : 아니 미워하고 말고 할 시간이나 있었어? 간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유진우 : (싱긋 웃으며) 인생에 도움 될 조언 몇 마디 해줬더니 삐졌어. 울더라고.

박선호 : 조언 몇 마디? 야, 니 조언은 말이 조언이지 그냥 면전에 대고 스트레이트로 막 까대는 거잖아! 초면부터 까댄거냐? 아 참 대단하다 진짜 거 진짜!

최양주 : (치킨 뜯으며) 대표님! 오늘은 레벨업 안 하세요?

박선호 : 지금 레벨업이 문제야?

최양주 : 저 벌써 중독 됐나봐요. 또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요.

유진우 : 내가 그렇게 멋있었어?

최양주 : 아뇨. 대표님 아작나는 모습이 압권이죠. 그게 어떤 좀 카타르시스가 막 몰려오더라구요.

유진우 : 무시하지 마라. 나 이제 레벨 two다.

최양주 : 그니까 빨리 한 판 뛰시죠? 새 검 찾아야죠. 빨리!

유진우 : 기다려. 정세주부터 해결하고.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100억 준다는 차형석을 걷어찼는지 들어보고.


<E> (스페인어) 승객 여러분, 저희 기차는 곧 그라나다 역에 도착합니다.

    Ladies and gentleman, the next stop is Granada station.

잠들었던 정세주, 방송을 듣고 일어난다. 외국인을 깨운다.

정세주: Despierta. Ya llegamos a Granada. (=일어나요. 그라나다 다 왔어요.)

외국인, 미적거린다.

정세주, 짐을 챙긴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자 정세주는 극도로 불안해한다.


유진우, 7시 59분에 그라나다역에 도착한다. 역을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지만 정세주는 보이지 않는다. 역무원에게 다가간다.

유진우 : (초조한 듯) Is there any other exit?

역무원, 고개를 젓는다.

유진우, 플랫폼까지 가서 정세주를 찾는다. 정세주와 같은 칸에 있던 외국인은 유진우를 스쳐지나간다. 역무원이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자 열차는 출발한다. 유진우는 열차 밖에서 차창을 통해 정세주의 짐을 봤으나 지나친다. 멀어지는 열차를 착잡하게 바라본다. 박선호한테서 전화 온다.

유진우 : 여보세요?

박선호 : <E> 어떻게 됐어?

유진우 : 예감이 안 좋아.

박선호 : 안 나타났어?

유진우 : 예감이 아주 안 좋은데.

박선호, 한숨 쉬고 최양주는 뒤 소파에 앉아 그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본다.


서정훈, 호스텔 6층 책상에 걸터앉아 핸드폰으로 꽃집을 알아본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E> 노크소리

서정훈 : 네?

정희주 : 저기, 저 주인인데요.

서정훈 : 아! 네. 들어오세요.

정희주, 문을 열고 들어간다. 서정훈, 방긋 웃으며 서 있다.

정희주 : 어, 여기 손님...

서정훈 : 아, 그...나갔습니다. 아하하. (꾸벅) 안녕하세요! 전 오늘 온 일행인데요, (지갑 꺼내며) 그 여기 엑스트라 베드 하나 더 넣어 주실 수 있죠?

정희주 : 여기 더 묵으시게요?

서정훈 : 일단 그럴 것 같은데요. 나가신다는 말씀이 없으셔서.

정희주 : (단호하게) 안 되는데요. 방 빼셔야 되는데요.

서정훈 : 예?

정희주 : 손님이 하루치만 내셨거든요. 그리고 이거. (돈을 내민다)

서정훈 : (지갑을 도로 넣고 돈을 받으며) 어...뭡니까?

정희주 : 어제 숙박비에요. 환불 해 드리는 거예요.

서정훈 : (어리둥절) 환불이요?

정희주 : 그냥 전해드리면 아실 거에요. 체크아웃은 11시거든요. 꼭 지켜주세요.

정희주, 목례하고 돌아서려고 한다. 마침 유진우에게서 전화가 온다.

서정훈 : (다급히) 아, 저기! 저, 저 잠시만요! 잠시만요. 예. (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유진우 : <E> 너 지금 어딨어?

서정훈 : 아, 저 방인데요.

유진우 : 너 아래층에 내려가서 정희주씨한테 살짝 좀 물어봐. 남동생 혹시 연락 있는지.

서정훈 : 여기 같이 계십니다.

유진우 : 누가. 정희주씨가 거기 있다고?

서정훈 : 근데 환불을 해주신다는데요?

정희주, 샐쭉거린다.

유진우 : 환불?

서정훈 : 바꿔드리겠습니다. (희주에게 핸드폰 내밀며) 통화 좀 해보시죠. 전 자초지종을 몰라서요.

정희주 : (핸드폰 받아들고) 네.

유진우 : 여보세요? 환불은 필요 없습니다. 왜...

정희주 : 아니에요. 환불해드려야죠. 문제가 너무 많은데 그 돈을 받으면 제가 양심이 너무 없는 사람이잖아요. 일행분께 돈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까 아침도 안 드신거나 다름 없어서 그 돈도 안 받을게요. 받으면 양심이 없는 게 될까봐.

유진우 : (쩔쩔맨다) 아이, 저기...

정희주 : 그리고 오늘부터 이 방 수리해야 돼서요. 창문도 고쳐야 되고, 전기선도 다시 봐야 되고, 쥐도 잡고 할 게 많아서. 방은 꼭 빼주셔야 돼요.

유진우 : 아직도 화가 많이 났나 본데, 아침 일은 미안해요. 아니, 내가 좀 욱하는 게 있는데

정희주 : (애써 웃으며) 아니에요! 화 난 거 아니에요. 말씀이 다 사실이니까요. 맞는 말씀이세요. 그래서 저도 사실만 말씀드릴게요. (속사포로) 집이 거지같은 건 맞는데요, 제가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집은 거지같지만 양심은 남아있어요. 그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환불해 드립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정훈에게 핸드폰을 넘기려 한다)

유진우 : (다급히) 자, 잠깐만요! 아이, 나도 좀 말 좀 합시다. 아니 뭐 말을 못 하게 혼자서 막...

정희주 : (짜증내며) 그건 손님 특기시잖아요! 사람 말도 못 하게 혼자서!

유진우 : 뭐요?

정희주 : (점점 더 화내며) 제가 뭘 말하기도 전에 혼자 다다다다, 다 하셨잖아요! 하고 싶은 말 다! 저를 양심도 없고, 예의도 없는 사람 취급하셨죠? 제가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른 호텔로 가시라고 했잖아요! 6층이라 힘드실 거라고도 했고요! 청소도 안 됐으니까 다른 데로 가시라고! 전 분명히 다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손님이! 본인이 괜찮다고 해놓고 왜 사람을 사기꾼 취급하세요? 그리고요 전 게으르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손님보다 부지런하게 살걸요! (버럭) 제 인생을 뭘 안다고 그렇게 단정 지으세요! (씩씩댄다)

유진우, 희주의 화를 그대로 들으며 벤치에 앉는다. 서정훈, 어쩔 줄 모른다.

유진우 : 그건...

정희주 : (말 끊으며) 그리고 그 돈 받으세요! 솔직히 손님도 그 돈 필요하시잖아요. 있죠, 짝퉁 신발에 짝퉁 시계차고 짝퉁 가방 끌고서 스크래치 난다고 유난 떨고. 굳이 이런 데 와서 싱글룸 찾고. 고객 서비스 찾고. 100조짜리 프로젝트 운운하면 뭐 있어 보이는 줄 아세요? 더 없어보이거든요! 솔직히 나이도 있으신 것 같은데 그 허세가 불쌍하시네요!

정희주, 숨을 몰아쉰다.

유진우 : 아까는 몰랐는데 말 잘하네요?

정희주 : 하, 저도 지금 알았어요. 제가 말 잘 하는지.

유진우 : (싱긋 웃으며) 내 시계가 짝퉁 같아요?

정희주 : 네. 30유로짜리요! 갑판에서도 안 팔려서 떨이로 넘긴거요!

유진우 : 그건 충격인데요.

정희주 : 어우, 모르셨다니 더 놀랍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핸드폰 넘기며) 여기요.

서정훈 : (공손하게) 예.

정희주 : (거친 호흡) 그럼, 11시까지 체크아웃 꼭 해주세요.

서정훈 : 예. 조심해서 들어가십쇼.

정희주, 매정히 문을 쾅 닫는다.

서정훈 : 대표님, 이거 뭡니까. 너무 충격인데요.

유진우 : (씁쓸한 듯) 내가 이 시계를 그 돈 주고 산 게 더 충격이다.

서정훈 : 근데 미남계는 아주 택도 없겠는데요?

유진우 : 아래층에 내려가면 막내 여동생 있거든? 걔한테 좀 물어봐. 차라리 걔가 쿨해.

서정훈 : 아, 예. 뭘 물어보면 될까요?


서정훈, 서둘러 1층으로 내려온다. 정민주를 마주친다.

서정훈 : 어! 안녕.

정민주 : (쿨하게) 안녕하세요.

서정훈 : 너가 민주니?

정민주 : 네. 왜요?


유진우, 역에서 나오는데 서정훈한테서 전화 온다.

유진우 : 뭐래?

서정훈 : 그 오빠는 연락이 없고요. 뭐 오늘 안 오면 내일 오려니 하던데요?

유진우 : 아니, 그 집안은 장남한테 아무도 관심이 없어? 어떻게 나보다 더 관심이 없어?

서정훈 : 이 집 일상인가 봐요. 온다 그래놓고 안 오고. 툭하면 연락 끊기고. 어떻게, 짐 뺄까요?

유진우 : (복잡하다) 아, 놔둬. 지금 그리 갈 테니까.

이수경, 유진우를 보고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넨다.

이수경 : 어머! 어머. 안녕하세요! 아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

이수진 : 수경아! 같이 가!

이수진, 진우를 마주치자 멈칫한다. 수진과 진우,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이수경 : 언니!

서정훈 : <E> 여보세요? 대표님.

유진우 : 다시 전화할게. (끊는다)

이수진, 애써 웃으며 진우 쪽으로 걸어온다.

유진우 : (악수하며)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수경 : 네. 진짜 신기해요. 서울에서도 한 번 못 뵀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

유진우 : 그러게. (수진을 보며) 오랜만이야.

이수진 : 네. 진짜. 여긴 어쩐 일이에요?

유진우 : 회사일 때문에. (수진의 부른 배를 본다)

이수진 : 좀 많이 불렀죠. 표 많이 나요?

유진우 : (씁쓸한 듯) 난 몰랐네. 지금 알았어.

이수진 : 아, 그래요? 난 들은 줄...

유진우 : 아무도 나한테 안 알려주던데? 예정일이 언제야?

이수경, 둘의 눈치를 본다.

이수진 : (주눅들어) 12월이요.

유진우 : 그래. 축하해.

이수경 : 아이, 그래서 차로 가자고 했는데 언니가 굳이 기차를 타보자고 해서요. 아, 임산부가 수선이죠.

유진우 : 어디 가?

이수경 : 세비아요. 기차로 한 2시간이면 가더라고요.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요.

유진우 : 자매끼리 여행중인가 보지?

이수진 : 아니요. 그이 출장 따라왔는데, 갑자기 그라나다로 올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이수경 : 갑자기 예정도 없이 왔잖아요. 그래서 그냥 바르셀로나에 있을까 하다가 언니도 그라나다는 안 와봐서 같이 따라왔죠.

유진우 : 여기에 언제 왔어?

이수경 : 어제 아침이요.

유진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이수진 : 저, 근데...괜찮아요?

유진우 : 뭐가.

이수진 : 기사가 떠서 좀 놀랐어요.

이수경 : (수진에게 눈치주며 작은 목소리로) 언니!

유진우 : 성공했네. 사람들 놀래키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혼이 처음에나 어렵지. 두 번 째는 쉽더라고. 1년 살았음 충분한 거 아냐? 지겹잖아. 넌 안 지겨운가 보지?

이수진, 진우의 말을 듣곤 한껏 움츠러든다.

이수경 : (둘의 눈치를 살피며) 저기, 기차 시간이 다 돼서요.

유진우 : 어. 들어가봐. 반가웠어. 관광 잘 하고.

이수경 : 네. 언제 가세요?

유진우 : 모르겠어, 아직. 일이 안 끝나서.

이수경 : 한국에서 함 봬요.

유진우 : 그러자.

이수경 : (돌아서며) 가자! 언니.

이수진, 진우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돌아선다. 유진우, 복잡한 듯 한숨을 내쉰다.

이수경 : 아, 갑자기 만나서 깜짝 놀랐네. 아 3년 만에 처음 만난거야, 언니. 와, 근데 형부는 하나도 안 변했다. 똑같네.

수경은 표를 끊고 있고 수진은 진우를 아련하게 쳐다본다. 유진우, 아까의 대화를 곱씹으며 서 있다.

이수진 <E> 그이 출장 따라왔는데, 갑자기 그라나다로 올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이수경 <E> 갑자기 예정도 없이 왔잖아요.

유진우 <E> 여기에 언제 왔어?

이수경 <E> 어제 아침이요.

유진우, 스마트렌즈를 꺼내 낀다. 눈을 감았다 뜨니 진우의 눈동자가 빛난다.

‘Zinu님이 27번째 로그인 하셨습니다.’

최양주, 사무실 모니터로 진우가 게임에 접속했음을 알아챈다.

최양주 : 응? 안 하신다더니?

박선호 : 뭐야...정세주는 안 찾고 이 와중에 뭔 게임.

유진우, 오른손을 들자 녹슨 철검이 생긴다. 허공을 터치하며 알림을 넘긴다.

‘Zinu님은 이제 레벨2입니다. 전사의 열쇠로 새로운 무기를 획득하세요. 마을을 둘러보세요. 새로운 유저가 있습니다.’

박선호 : 새로운 유저?

최양주 : 누가 서버에 접속한 것 같은데요?

박선호 : 누가?

최양주, 새로운 유저를 확인한다. 유진우, 결심한 듯 차로 걸어간다. 왼 손에 있던 칼을 등 뒤로 집어넣는 시늉을 하자 칼이 사라진다. 차에 타니 알림이 뜬다.

‘새로운 유저를 추적하시겠습니까? 현재 위치에서 5.5km 사크로몬테 지구’

유진우, 차 타고 게임의 안내를 받아 새로운 유저를 찾으러 간다.

최양주 : 정세주 아니에요? 정세주겠죠?

박선호 : 그라나다에 왔는데 집에 안 오고 뭐해?

최양주 : (살짝 흥분하며) 아이, 이게 프로그래머라면은 게임부터 테스트하는 게 이게 어떤 본능이죠. 게임이 자식이나 마찬가진데. 문제 없나 아니면 잘 돌아가나 살펴보고. 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수도 있고.

유진우, 목적지 주변에 도착하자 쓰러진 아라곤병사가 보인다. 최양주와 박선호, 모니터로 병사의 시체를 보곤 놀란다.

박선호 : 아우씨, 깜짝이야. 놀래라.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라곤병사의 시체들이 많이 보인다. 차에서 내려 싸우는 소리가 나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유진우. 이 상황을 최양주와 박선호가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양주 : 에? 차형석대표 아니에요?

유진우, 칼을 들고 차형석에게 다가간다.

‘아라곤 왕국의 정찰대를 모두 해치웠습니다. 새로운 유저를 발견했습니다.’

차형석과 유진우, 만난다. 서로 칼을 들고 팽팽한 기싸움 한다.

유진우 Na; 이 자식이 바로, 차형석이다. 내 친구이자 내 회사의 공동창업자. 지금은 친구도 동료도 아니지만.

‘유저와 인사를 나누세요. 유저와 관계를 맺으면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차형석 : (그닥 반갑지 않은 듯) 와, 이게 누구야? 아 어떻게 알았어? 이거 나만 아는 게임인 줄 알았는데?

유진우 : (같은 기세로) 이 바닥에 비밀이 어디 있어? 차형석이 알면, 나도 아는 거지.

차형석 : (헛웃음) 유대표. 이번 건 끼어들지 마. 게임 끝났어.

유진우 : 끝났다고?

차형석 : 어. 이미 끝났어.

유진우 : (빈정대며) 쓰읍. 어젯밤에 나한테 전화가 왔던데. 차형석이랑은 도저히 계약 못 하겠다고. (여유로운 듯) 끝나지 않은 것도 알지만 뭐 일단 속는 셈 치고. 그럼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내가 알려줄게. 뉴워드가 혹시 운이 좋아서 이걸 사더라도 결국 우리랑 손잡아야 하잖아. (눈을 가리키며) 이 렌즈는 우리 거니까. 근데, 뉴워드는 영원히 스마트 렌즈는 사용할 수가 없어. 내가 반대할 거니까. 그니까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서 이걸 개발해도? 헛 돈 날리는 거라는 것만 확실히 알고 있으면 돼. 결국에 우리가 손잡게 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계산하고 있을까봐 미리 알려주는 거야.

차형석 : 제이원 홀딩스가 유진우 개인 회사는 아니잖아?

유진우 : 그렇지만 내가 작정하면 못 막을 것도 없지.

차형석 : 대표가, 회사 이익은 생각도 안 하나?

유진우 : 회사 이익보다 중요한 예외도 있지. (칼로 형석을 가리키며) 넌 내 인생의 예외야. 잘 알 텐데? 넌 죽을 때까지 예외야. (비아냥대며) 그러니까 헛된 희망 품지 말고 헛된 돈 쓰지 말고 가서 와이프나 챙기는 게 낫지 않겠어? 만삭의 아내를 여기까지 데려와선 혼자 기차 타게 내버려 두고 뭐 하는 거야?

유진우와 차형석, 서로 노려보며 꿋꿋하게 서 있다.

유진우 Na; 나는 저 자식과 인생의 6번쯤 대결했고, 지금까지 전적은 3승 3패쯤 된다. 그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패배는 내 아내를 뺏긴 것이다.

‘유저끼리는 동맹을 맺거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동맹을 맺으시겠습니까?’

서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허공에 X를 그린다.

‘동맹을 서로 거절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적으로 간주됩니다. 적과는 언제든 결투를 할 수 있습니다. 결투에서 승리하면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차형석 : (도발한다) 붙어볼까? 나도 이거 처음 해보는데. 진짜 유저끼리의 결투. 이게 이렇게 기회가 오네.

최양주 : 차대표 검이 훨씬 좋은데요? 레벨도 높고? 그니까 내가 빨리 검 찾으라니까! 아이씨...

박선호 : (불안한 듯) 쟤 또 폭주하는 거 아냐?

박선호, 진우에게 전화한다. 막 대결을 하려던 찰나 진우가 전화를 받는다.

유진우 : 여보세요?

박선호 : 유대표, 하지 마. 하지 마라.

유진우 : 왜?

박선호 : 지금이 결투할 때냐? 저쪽도 정세주를 아직 못 잡은 건 확인했으니까 된 거야. 빨리 헤어져.

유진우 : 저 자식 저거 도발하는데?

박선호 : (답답하다) 유치하게 굴지 말고 자제하라고!

유진우 : (능청맞게) 나 원래 유치한 놈이야. 몰랐어?

박선호 : 얌마, 진우야!

최양주 : 대표님 이거 무조건 지는 게임이에요! 하지 마세요!

유진우 : 저 새끼 운동신경 꽝 인거 내가 아는데.

최양주 : 게임은 운동신경이 아니라 아이템 빨이에요! 검부터 상대가 안 된다니까요! 저 칼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일걸요? 흑역사 나온다니까요!

유진우, 차형석을 노려보며 한숨 쉰다.

차형석 : (자신만만) 안 와? 내가 갈까?

차형석, 작정하고 달려드는데 진우가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게임을 나간다.

‘Zinu님이 게임을 나가셨습니다.’

차형석 : 뭐야. (헛웃음) 너 도망가는 거야?

유진우 : 레벨이 다른데, 붙자는 건 양아치 짓이지. 기다려. 연락할 테니까.

유진우, 뒤돌아 걸어간다.

차형석 : 야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유진우, 대답 없이 걸어간다.

차형석 : 꼭 한 번 붙어보자. 연락해! 살살 할 테니까!

유진우,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들어보인다.

차형석, 게임을 나간다. 비서에게 전화를 건다.

차형석 : 어떻게 된 거야. 유진우가 게임 들어와 있는데? (버럭)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이 새끼야! 아이씨. (헛웃음) 하하! 야. 그 자식이 진우한테도 접촉했나 본데, 알아봐. 어? 어디까지 진행 된 건지.

유진우, 차 타고 호스텔로 돌아간다.

유진우 Na; 3년 전부터 인생의 목표가 단순해졌다. 차형석이 원하는 건 내가 뺏는다. 그 자식이 간절하게 원할수록 반드시 뺏는다. 그러니까 그 애가 차형석 이름을 내뱉는 순간에 사실은 이미 결정된 거다. 내가 이 게임을 반드시 차지해야 하는 이유.

A에게 전화가 오자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다.

유진우 : 여보세요. 지금 차형석이...특허? 아직 확인 못 했는데...그래요?

유진우,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한다.

유진우 Na; 이번은 우리의 7번째 대결이고 7번째는 무조건 내가 이긴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S#4 희주와 진우의 계약

서정훈, 호스텔 1층 계단에 앉아있다. 유진우에게 전화가 온다.

서정훈 : 예! 접니다. 대표님.

유진우 : <E> 정희주씨 지금 어디 있어?

서정훈 : 주방에 있어요. 친구가 와 있습니다. 아, 지금 바로요? 예.

김상범, 주방 냉장고에서 씨그램을 꺼낸다. 정희주, 설거지하고 있다.

김상범 : 아니 뭐 그런 진상이 있냐? 야 그거 주인이 여자고 어리다고 얕보고 그러는 거야. 너 또 어버버하고 울기만 했지?

정희주 : 아니야. 이번엔 나도 했어!

김상범 : 뭐라고.

정희주 : 그냥 넘어가려 그랬는데 도저히 안 되겠는 거야. 너무 화가 나서 진짜. 그래서 환불해주고 나가달라고 했어.

김상범 : (기특한 듯) 진짜?

정희주 : (기세등등) 어! 진짜로 했어. 좀 아까!

김상범 : 뭐라 그랬는데?

정희주 : 하, 몰라. 기억도 안 나. 나오는 대로 막 지껄였어. 너무 화가 나니까 말이 막 튀어나오더라?

김상범 : 그랬더니 뭐래.

정희주 : 나보고 말 잘 한대.

김상범 : 그리고?

정희주 : 그리고 별 말없이 가만 듣더라고? 막 깽판칠 줄 알았는데.

김상범 : 그래서 그런 놈들은 똑같이 해줘야 된다니까? 겁먹고 물러나면 점점 더 막 나간다고.

정희주 : 근데 진짜 신기할 정도로 그냥 듣고만 있더라. 아침엔 그렇게 성질을 부리더니.

김상범 : 기죽은 거지. 알겠지?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 어? 맨날 찍소리도 못 하고 뒤에서 찔찔 짜지 말고.

정희주 : (흘겨보며) 아! 내가 또 맨날 찔찔!

서정훈, 주방 문 노크하고 들어온다.

서정훈 : 아, 여기 계셨네요?

정희주 : 네. 지금 가시게요?

서정훈 : 아...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아까 제가 명함을 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경황이 없어서 못 드렸습니다. (정식으로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서정훈이라고 합니다. (명함 내민다)

정희주 : (꾸벅) 아, 네. (명함 안 받는다)

서정훈 : 어...일단 좀 받으시죠.

정희주 : 아! 네. (받는다)

김상범 : 제이원 홀딩스...여기 엄청 큰 투자회사 아닌가요?

서정훈 : 아, 아시네요. 저희 회사가 이쪽 분야에선 대한민국 넘버원입니다.

김상범 : 알죠. 뉴스에서 많이 봤어요.

정희주 : 근데 이걸 왜...

서정훈 : 저희 대표님이 정희주씨를 뵙고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 하셔서요.

정희주 : 저를요?

서정훈 : 네.

정희주 : 대표님이 왜 저를...대표님이 누구신데요?

서정훈 : 휴...601호 그 분이요.

정희주 : 네?

서정훈 : 짝퉁 시계...짝퉁 신발...하하하. 그 분이 제 보스이십니다.

정희주 : (못 믿겠다는 듯) 네?

김상범 : 저 혹시 유진우 대표 말씀하시는 거에요?

서정훈 : 오! 아시네요?

김상범 : 지, 진짜 유진우요? 유진우씨가 여기 601호에 묵고 있다고요?

서정훈, 맞다는 듯 웃는다.

김상범 : (희주 보고) 야. 너가 말한 그 사람이 유진우였어?


정희주와 김상범, 노천 카페에서 유진우를 검색하고 있다.

정희주 : (투덜대며) 아! 짝퉁얘기만 안 했어도. 그 얘기만 안 했어도 괜찮은데! 아 이게 다 할머니 때문이야! 할머니가 짝퉁으로 도배를 했다고 해서! 어쩐지 난 처음부터 다 명품 같았다구. 내가 처음에 본 게 잘못된 게 아니었어. 하...

김상범 : 제발 한국 뉴스도 좀 보고 살아라. 넌 뉴스를 안 보더라?

정희주 : 한국에 갈 일도 없는데 뉴스는 봐서 뭐해.

김상범 : (핸드폰 보며) 그래 맞아. 이 사람 부인이 고유라였어.

정희주 : 고유라가 누군데?

김상범 : 배우 고유라 몰라? 엄청 예쁜데. (이혼 기사 보며) 어? 근데 이혼하네?

정희주 : 이혼했다고?

김상범 : 아니 이혼 한다고. 고유라가 이혼소송 걸었네? 이 사람 두 번째 결혼일텐데 또 이혼하네?

정희주 : (빈정거리며) 뭐야. 뭐 헐리웃스타야? 근데 오빠, 왜 나를 만나자고 하는 걸까? 설마 기분나쁘다고 고소하고 그런 거 아니겠지? 아니 그럼 재벌이 너무 찌질한 거 아니야? 아! (절망한다)

유진우, 마침 차를 타고 도착한다. 희주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김상범 : 와...진짜 유진우네. 신기하다. 근데 고소할 분위기는 전혀 아닌데?

진우가 다가오자 희주와 상범은 일어난다. 진우, 상범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희주에게 말을 건다.

유진우 : 미안해요. 늦었죠?

정희주 : (어색하다) 아니에요. 저도 좀 전에 왔습니다.

유진우 : (손 내밀며) 일단 우리 악수부터 하죠? 화해의 악수.

정희주 : 아, 네! (쭈뼛거리며 악수한다)

유진우 : 아침엔 정말 미안했어요. 내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좀 있어서요. 화 풀어요.

정희주 :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죠. 화나실만 한 일인데요.

유진우 : 그래도 예의가 없었죠.

정희주 : 아니에요! 예의는 뭐 저도 없었어서...제가 뉴스를 잘 안 봐서요. 유명하신 분인 줄 모르고 아깐 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릴...

유진우 : (손목시계를 보이며) 이 시계가 짝퉁은 아닙니다?

정희주 : 아, 네! 그럼요! 당연하죠. 어우, 가까이서 보니까 역시 다르네요.

유진우 : 어쨌든 아침 일은 좀 잊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원래 그 정도로 인격파탄은 아니거든요.

정희주 : 네. 저도 제발 잊어주세요. 제가 원래 화를 못 내는 성격이거든요. 진짜로.

유진우 : 그럼 서로 쪽팔린 기억이니까 우리 패스할까요?

정희주 : 네! 패스...

유진우 : 그럼 역시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정희주 : (몇 초 후에 알아듣곤) 아! 기억상실! 아, 네! 좋아요.

유진우 : 그럼 아침 일은 지금부터 서로 까먹는 겁니다?

정희주 : (능청맞게)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죠?

유진우 : (회심의 미소를 띠며) 앉으시죠.

김상범, 둘의 대화를 지켜보곤 헛기침을 한다.

유진우 : (상범을 보곤) 근데...

김상범 : 안녕하세요. 김상범이라고 합니다.

정희주 : 친한 오빠에요.

유진우 : 아, 네. (악수하며) 반가워요!

김상범 : 얘가 좀 어리버리 해서요. 무슨 말씀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같이 들으려고 나왔습니다.

유진우 : 그건 곤란한데요.

김상범 : 예?

유진우 : 둘이서만 할 얘기라서요. 자리 좀 피해줬으면 좋겠는데.

김상범 : 저한테는 하셔도 됩니다. 저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라서요.

유진우 : 다름없는 사이면 가족은 아니신 거잖아요.

김상범 : 예?

유진우 : 제가 제일 안 믿는 게 뭐뭐 같은, 뭐뭐나 다름없는, 이런 말입니다. 가족도 믿기 힘든 세상인데요. 내가 누군지 아니까 아마 나에 대해서 벌써 검색해봤을 것 같아서 말인데요, 난 두 번을 결혼했는데 두 번 다 깨졌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내가 가장 믿던 친구랑 내 아내가 배신을 때려서요. 두 번째 결혼은 겨우 1년 살았는데 위자료로 내 재산의 절반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 여자는 돈에 완전히 미쳤죠. 아마 결혼기한보다 이혼소송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이게 현실이라서요. 난 가족같은 이라던지,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친구, 이런 관계 절대 안 믿습니다. (희주 보며) 희주씨도 지금은 안 믿는 게 안전하고요. 왜냐면 난 지금 희주씨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상황이 변하면 관계도 변할 수 있거든요. 특히 돈에 관해서는요. (다시 상범 보며)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희주씨하고만 할 겁니다.

김상범 : (희주보고) 나 공방에 가 있을게.

유진우 : 고마워요.

김상범, 진우가 맘에 안 드는 눈치로 돌아선다.

유진우 : 앉아요.

진우와 희주, 서로 마주 앉는다.

정희주 : (눈치보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유진우 : 절차를 건너뛰는 것 같긴 한데 시간이 없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내가 누군지는 이제 잘 알죠? 나는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물건을 사서 돈 들여 키워서 비싸게 파는 게 내 일이죠. 근데 내가 왜 그라나다에 와 있는지 알아요? 앞으로 1년 안에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보다 다른 걸로 훨씬 더 유명해 질 거거든요.

정희주 : 뭐로요?

유진우 : 마법.

정희주 : 마법이요?

유진우 : 네. 마법. 앞으로 그라나다는 마법의 도시로 유명해질 겁니다. 사람들이 마법에 홀려서 벌떼처럼 몰려들 거에요. 그것도 단기여행이 아니라 한 달씩 장기체류 하는 사람들. 돈 많고 시간 많은 부자들도 지중해 섬이 아니라 여기로 올 거고요. 왜냐면 그런 부류들은 재밌는 거라면 환장하거든요. 아끼지 않고 돈을 쏟아붓죠. 그러니까 내가 미리 팁을 주는데 당장 그 빌어먹을 엘리베이터부터 설치해요. 지붕 없애고 창문 고치는 정도 말고 완전히 싹 다 뜯어고치라는 거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아, 차라리 그딴 거 팔아버리고 호텔을 하나 사도 되겠네. 그래 괜찮은 호텔 하나 사버려요.

정희주 : 네?

유진우 : 어쨌든 1년 후에는 정말 이 도시의 방이 모자라서 난리가 날 테니까. 난 전문가니까 내가 투자하라고 하면 믿고 하면 돼요. 호텔 사서 지배인 두고 편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인생도 좋잖아요. 희주씨는 꿈이 뭐에요? 돈만 있으면 꼭 하고 싶었던 일 없어요?

정희주 :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아니 하, 제가 무슨 수로 호텔을 사요? 돈이 없어서 수리도 못 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지금 거지같은 집도 다 빚이에요.

유진우 : 돈이 곧 생기겠죠.

정희주 : 돈이 어디서 생겨요.

유진우 : 누가 줄 지도 모르죠.

정희주 : 누가요?

유진우 : 누구겠어요.

유진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희주를 바라본다. 희주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유진우 Na; 이것이 내가 처음 그라나다에 왔던 날의 일이다.


S#5 1년 후 그라나다행 열차

유진우, 열차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유진우 Na; 벌써 1년 전 일이다.

그라나다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온다.

유진우, 왼 발을 절뚝거리며 화장실에 간다. 갑자기 천둥이 치자 불안해하며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 문을 잠근다. 총을 장전하고 문을 열어 누군가를 쏜다. 절뚝이던 발이 괜찮아진다. 객실 문을 열자마자 괴한들에게 총을 쏜다.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수라장이 된다. 진우는 총을 쏘고 맞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싸운다.

먹구름이 낀 빗속을 달리던 열차는 터널로 들어간다. 객실이 깜깜해진다. 괴한과 진우는 팽팽하게 서로 대치하고 있다. 서로에게 총을 쏜다.

유진우 Na; 1년 전, 내가 희주에게 말했던 미래예측은 어떻게 됐을까. 반쯤은 맞았고, 반은 완전히 틀렸다.


극본 송재정 작가님. 나퐁듀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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